햄버거 조지기(?)
런던에서 1년을 지내다가 북아일랜드에 가게 되어서(북아일랜드는 영국령으로 분류된다) 잠시 애인의 본가인 더블린에 체류중이다. 일주일 정도 걸릴 줄 알았던 방 구하기가 3주까지 끌고 오니 둘 다 짜증이 나 있는 상태에서 아버님께서 수제버거 먹으면 행복해져요(정말로 그렇게 말씀하셨다)라면서 우리의 기분을 풀어주셨다.
수제버거를 만들어 먹기 전까지만 해도 계약서도 쓰고 기분이 붕떠있는 상태였지만, 집주인이 다른 사람을 들이겠다고 해버려서 졸지에 방 구하기 오디션에서 떨어진 탈락자 신세가 되어서 우리는 거의 실성한 상태로 침대를 주먹으로 치다가 우리 대신 방 들어간 사람들 건강해라! 하면서 욕은 분명 아니지만 욕인 말을 내뱉고 있었다. 런던에서 방을 구할 때만 해도 뷰잉할 때 오디션을 본다는 느낌은 아니었는데, 그게 순전히 우리가 운이 좋아서 그랬다는 걸 뼈져리게 깨닫는 순간이었다.
당분을 섭취하면 기분이 좋아져요
햄버거를 만들어먹고 나른해진 기분으로 별채에서 넷플릭스 보면서 쉬었다.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를 보다가 중간에 멈췄다. 그렇지 않아도 가뜩이나 기분이 안 좋은데 하필 보던 에피소드가 탈북자에 대한 편견을 쏟아내는 장면이라 괜히 이방인 생활을 하고 있는 나에게 과몰입이 되어서 멈췄다.
팬케이크 먹으면서 엔믹스 뮤직비디오를 봤다. 한국인인 나보다 케이팝을 더 잘 아는 아이리쉬 애인을 둔 덕...이라고 해야 할지 탓이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개인적으로는 지니가 내 원픽이었는데 지니가 탈퇴한 이후로 곡을 잘 뽑는 걸 봐서(물론 순전히 내 취향문제지만) JYP가 사실은 지니를 싫어했던 건 아니었을까 싶었지만(지니 탈퇴 후에 실험적인 성격이 덜하고 더 대중적인 곡들을 뽑아낸다는 기분은 지울 수가 없다), 세상에서 제일 쓸데없는 걱정이 연예인 걱정이다.
지금 당장 들어가 살 방 구하는 것도 이렇게 힘든데 굳이 나보다 잘 살고 있을 연예인들 걱정 해봤자 어차피 그 분들이 나보다 훨씬 잘 사니까. 애인이 만들어준 팬케이크는 너무 달았다. 이렇게 먹고 살다가는 당뇨에 걸리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마트에서 사 온 스파게티
어제 저녁을 먹고 나서 이메일로 문의를 남겼고, 오늘 제대로 된 답장을 받아냈다. 대학생들 졸업 시즌이라 방들이 한꺼번에 나와서 지금 당장 들어와 살 사람을 구하고 있다는 거였다. 어떻게 말을 해야되나 어버버 거리는 순간에 애인이 기지를 발휘해서 뷰잉하는 날 바로 계약서 쓰고 렌트비 지불하는 조건으로 방을 보러가게 해달라고 딜을 했고 에이전시에서도 바로 오케이 해서 힘겨운 3주 간의 방 구하기 프로젝트는 끝이 났다.
인생의 단맛
보통은 호텔이나 단기 임대 같은 임시 숙소를 구한 다음에 숙소를 구한다. 내가 처음 더블린 왔을 때에도 그런 식으로 구했었다. 런던에서도 호텔을 먼저 빌리고 그 주변에 뷰잉을 다니면서 방을 구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욕심을 부려서 더블린에서 애인과 애인 부모님이랑 시간을 보내면서 북아일랜드에 있는 방을 구하려고 하니 내일 기차를 타면 벌써 세 번째 기차다. 숙박비는 따로 들지 않았으니 금전적으로는 부담이 없었지만 자그마치 왕복 7시간이 걸리는 강행군이었다. (루아스 타고 기차역까지 1시간, 기차 대기시간, 기차 2시간) 그 강행군을 이번에 벌써 세 번째 하는 거고, 아버님께서 이삿짐 나르는 건 도와주겠다고 하셨지만, 죄송한 마음은 어째 지울 수가 없다. 세 번 왕복에 한 번 이사, 결코 만만한 스케쥴은 아니다.
만약 돈이 부족하다거나 나처럼 가족과 함께 지내겠다 하는 특수한 상황이 아니라면 방 구하기 전에 임시숙소는 꼭 근처에 구해놓고 방을 구하는 걸 격하게 추천한다. 그나마 대화할 사람이 있어 망정이지 나 혼자서 모든 걸 다 해야하는 상황이었다면 짜증내면서 영국에서의 생활을 다 정리하고 한국으로 귀국했을 지도 모를 정도로 고통스러운 3주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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