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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일기/영국 감정

런던 무제한 오락실 Free Play City

by 이세계 아이돌 2022. 9.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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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케이드 랩소디

영국에 오기 전에도 오락실을 좋아했었다. 게임을 잘 하는 편은 아니었지만, 가끔씩 공부하다가 이해가 안 돼 답답할 때면 오락실에 갔다. 한 두 판 정도 하고 나서 돌아가면 여전히 이해가 안 돼 답답했던 기억이 난다. 심지어 게임을 잘 하는 편도 아니라서 오락실에서 더 스트레스를 받고 돌아오기도 했다.

 

하필이면 내가 오락실에서 좋아하는 게임들은 리듬게임 아니면 격투기 게임이었다. 잘 하지도 못하면서 그렇게 돈만 낭비했었다. 그러다가 RPG 게임을 잠깐 즐겼고, 더이상 게임이 취미가 아니게 되었다. 넷플릭스를 보고 소설을 읽는 걸로 게임을 대신했었다. 그렇게 자연스럽게 게임을 안 하다보니 오락실이라는 곳이 있다는 것도 더 이상 생각하지 않게 되었다. 더군다나 혼자 노는 것을 싫어하는 나에게 혼자 가는 오락실만큼 따분한 건 없었다.

영국 오락실

영국에서 아케이드를 가게 된 이유

하필 왜 황금 같은 토요일(시차 때문에 여기는 아직 토요일이다)에 아케이드를 들렀는지는 아직도 모르겠다. 사실 댄스러쉬(Dance Rush Stadom)라는 게임을 한국에 놀러갔을 때 한 번 해보고 언젠가 한 번쯤은 다시 플레이해보고 싶었다. 그런데 이 게임 하나를 하기 위해서 집에서 지하철을 타고도 한 시간 반 거리에 있는 아케이드를 들리는 것은 솔직히 정신나간 짓이라고 생각했다.

 

누군가에게는 한 시간 반쯤은 괜찮을지도 모르겠지만, 타고난 집돌이인 내가 왕복 세 시간 떨어진 곳에 있는 아케이드를 그것도 두 판 정도 하면 금방 질려서 남들 하는 것만 구경할 것이 불보듯 뻔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간 것은, 오늘이 아니면 올해 안에는 갈 일이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14일 남아있던 홀리데이에서 이미 4일을 썼고, 이번에 4일짜리 홀리데이고, 다음달에는 스페인 여행에 5일을 쓰기 때문에 딱 하루의 홀리데이가 남는다. 11월달에 남은 하루를 쓸 텐데, 그 날에는 그냥 집에서 쉬고 싶지 않을까. 아직 11월이 되려면 꽤 멀었지만 합리적인 의심이 든다. 할로윈이든 연말이든 뭔가 하나 있어서 11월달의 홀리데이에는 피곤할 예정이다.

영국 오락실

특이한 영업시간

사실 구글 지도나 검색을 통해서 두 달 전부터 이미 이 오락실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특이해도 너무 특이한 영업시간 때문에, 그리고 기묘할 정도로 내 오프 일정과 맞지 않은 덕분에 두 달만에 찾아가보게 되었다.

 

영업일은 목, 금, 토, 일이고 입장료는 평일 이틀은 5파운드, 주말에는 10파운드이다. 입장료를 내고 한 번 들어가면 내부에 있는 게임기들은 코인을 넣지 않고 무제한으로 즐길 수 있다. 이 정도만 해도 충분히 매력적인데 코나미 어뮤즈먼트 카드로 플레이기록을 불러와서 게임을 할 수 있다(!!!!) 심지어 서버에 저장이 되는 듯하다(!!!!)

 

영국에 있는 모든 아케이드를 가본 것은 아니지만 런던 한정으로 시티센터 쪽 아케이드 들은 한 판에 1파운드씩 받고 간혹 VEGA 아케이드 같은 곳은 충전식으로 하는데 게임에 따라서 10파운드면 15판 정도 할 수 있으니 그냥 2시간 정도만 이 게임 저 게임 돌아가면서 플레이하면 충분히 입장료 값어치는 하는 것 같다.

 

영업일이 일주일 중에 딱 4일밖에 안 되기 때문에 여기서부터 일단 특이한데 영업시간은 더 특이하다. 이 정도면 장사를 하고 싶어서 운영하는 게 아니라 그냥 사장님이 취미로 오락실을 운영하는 것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굵고 짧게 운영한다.

 

목요일 : 오후 5시 - 11시

금요일 : 오후 5시 - 11시

토요일 : 오후 1시 - 11시

일요일 : 오후 1시 - 10시

 

영국 오락실

왠지 모를 예술가의 기운

들어가기 전부터 동네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 뭔가 예술하는 동네 같다고 해야 하나. 아케이드 들어가기 전에 펍에 가서 가볍게 핫도그를 먹었었는데 딱 예술대학교 앞에 있을 법한 느낌의 카페였다. 브라운관 TV 여러대를 쌓아놓고 현대영상예술 작품 같은 거 틀어져 있고, 인테리어도 콕 찝어서 설명할 수는 없는데 모더니즘을 지향하는 인테리어라고나 할까.

 

오락실 입구도 동네분위기에 맞게 예술하는 사람이 차린 오락실, 그런 느낌이라서 몇 분 동안은 자리를 뜨지 못했다. 갑자기 내가 다니던 학교 앞에 있던 카페 두 곳이 생각났다. 한 곳은 입구에 전신마네킹이 서있고 머리가 있어야 할 곳에는 머리 대신 확성기가 달려 있던 그 카페. 다른 한 곳은 사장님이 철사로 인형을 만들어 파는 카페였다. 뜬금없는 장소에서 만난 예대의 느낌이 나쁘지만은 않았다.

영국 오락실

리듬게임 천국(?)

런던이 아케이드를 가면 리듬게임 잔뜩 있고 그런 분위기는 하지만, 여기는 유독 그 정도가 지나치다. 태고의 달인부터 시작해서 뮤제카도 두 대고, 유비트도 두 대고, 비트매니아, 드럼매니아, 기타히어로, 펌프도 기체가 세개 있었던 거로 기억한다. 심지어는 망가져서 운영은 안 하는 것 같긴 하지만 한국의 자랑스러운 테크니카 3도 있다. 아, 그러고보니 펌프도 한국 게임이었지 참.

 

안타깝게도 내 목적이었던 댄스러쉬는 망가졌는지 전원도 꺼놓은 상태였다. 한 번쯤은 더 플레이해보고 싶었는데 아쉬웠다. 그래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직원에게 물어봤지만, 다른 게임을 즐겨달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그냥 가볍게 리플렉 비트, 유비트, 뮤제카 조금씩 하다가 노스텔지어 기체는 처음 봐서 신기한 마음에 한 판 해보고 순서 기다리면서 다른 사람들과 수다도 떨다가 세 시간쯤 되니까 질려서 그대로 나왔다.

영국 오락실

디제이맥스 테크니카 3

비록 망가진 상태인 것 같기는 했지만, 머나먼 영국에까지 한국 게임회사의 작품이 있는 것을 보고 솔직히 좀 놀랐다. 기체가 운영됐을 당시에는 인기가 있는 편이었을까 궁금했고, 언젠가 다시 가동한다는 소식이 들리면 한 번쯤 플레이해보고 싶기도 했다. 하지만 오늘 프리 플레이 시티를 한 번 다녀오니 게임은 역시 내 적성에 맞지 않는다는 생각이 든다.

 

누군가 같이 갈 사람이 있다면 그래도 한 번쯤은 더 가보겠지만, 역시 나는 방에서 가볍게 즐기는 게임과 넷플릭스가 좋다. 차라리 왕복 세 시간 걸려서 아케이드 갈 바에야 튜브 탈 돈 아껴서 맛있는 밥을 한 끼 더 사먹는 게 좋을 것 같다. 다들 알고 있겠지만 런던의 지하철은 꽤나 비싼 편이다. 나 같은 경우에는 센트럴 런던에 나가기 위해서는 트램을 타야 하는데 존1을 통과하면 왕복 차비로 9파운드가 나온다. 오락실 입장료로 10파운드를 썼으니, 오늘 하루 오락실을 위해서 19파운드를 쓴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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