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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일기/영국 감정

런던 피카딜리 서커스, 레스토랑 <Happy>

by 이세계 아이돌 2022. 10.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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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던 레스토랑 Happy

비싼 건 아니지만 싸지도 않은

피카딜리 서커스와 옥스퍼드 서커스 역 근처를 걷다가 발견한 레스토랑이다. 뭔가, 이 레스토랑에서 밥을 먹는 중에 행복하지 않으면 큰일이라도 날 것 같은 느낌이었다. 로컬 음식점과 비교를 하자니 그렇게 싼 편은 아니면서도 런던 알짜배기 땅에 큼지막하게 있는 레스토랑 치고는 가격이 싼 편이다. 가격은 솔직히 애매했다. 비싸다고 하자니 런던 한복판에서 밥을 먹는 것치고는 저렴했다. 더 기묘했던 건, 파이브가이즈에서 세트를 주문하는 것보다 여기서 파는 저가 라인의 스테이크가 확실히 저렴하긴 더 저렴했다. 물론, 양도 딱 그 만큼만 주는 건 함정이다.

 

안 본 눈 삽니다

자리에 딱 앉아서 메뉴판을 보는데 맙소사... 옛날 감성이 물씬 풍기다못해 촌스러움의 끝을 달리는 메뉴판이 나를 반겼다. 디자이너가 만든 거라면 좀 미안한 말일 수도 있지만, 아무리 봐도 전문 디자이너가 만든 메뉴판은 아니다. 레트로를 노렸다고 하기에는 가독성도 안좋은데다가 그림자가 너무 과하게 들어가 있어서 부담스러웠다. 폰트도 그냥 기본 폰트 쓴 것 같고 언제적 액자 프레임 디자인인지 총체적 난국이었다. 전직 디자이너로서 메뉴판을 보는 내내 고통스러웠다.

내가 내린 결론은, 디자이너가 아닌 사람이 디자인을 했거나 컨펌을 받는 중에 디자인이 산으로 가버렸거나 한 게 아닐까 정도쯤 된다. 나는 어리석게도, 메뉴판을 빨리 치워버리고 싶은 나머지 스테이크 하우스도 아닌 레스토랑에서 스테이크를 주문하는 크나큰 실수를 범하고 말았다. 한국에서야 사람들이 많이 찾는 음식점에 가면 어떤 메뉴를 주문하던간에 중간 이상의 맛은 보장되어 있지만, 런던에서 그런 걸 기대한 내가 바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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굳이 다른 메뉴를 놔두고...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유독 스테이크에 대해 평가가 좋지 않은 레스토랑이었다. 스테이크를 한 입 베어물고 크게 실망한 나는 애인의 다른 메뉴들을 조금씩 야금야금 뺏어먹었는데 후회가 밀려오기 시작했다. 왜 굳이 나는 다른 멀쩡한 메뉴를 놔두고, 심지어 다른 손님들 중에 스테이크 먹는 손님도 없었는데 모험을 했던 걸까.

다음번에 방문할 일이 생기면 꼭 꼭 스테이크 말고 다른 메뉴를 주문해야겠다. 고구마 칩스랑 햄버거가 그렇게 맛있었는데 왜 나는 소금과 향신료 맛밖에 나지 않는 짜디짜고 종이 씹는 질감인 스테이크를 주문해서 내 혀를 고통받게 만들었던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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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레오 밀크 쉐이크와 고구마 칩스

사실 버거는 맛이 없기 힘든 음식이라고 생각해서 논외로 하더라도, 고구마칩스와 오레오 밀크쉐이크는 진짜 맛있었다. 오레오를 갈기만 해서는 나올 수 없을 것 같은 맛인데다가, 오레오만 먹는 것보다 훨씬 달게 느껴졌다. 그렇다고 또 과하게 달지는 않았다. 사실 나는 단맛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데 딱 내가 좋아하는 선에서 자제된 느낌의 단맛이라 내 취향에는 잘 맞았다.

사실 메뉴판의 디자인이 조금 충격적이기는 했지만 전체적인 인테리어는 깔끔했고 직원분들의 서비스도 최고였다. 몇몇 직원분들은 굳이 서비스 때문이 아니더라도 살갑게 말을 걸고는 했는데 나는 이게 이 레스토랑의 컨셉이라고 생각한다. 이 레스토랑을 이용하는 동안에는 내가 음식만 먹으러 방문한 게 아니라 이야기 속의 주인공이 된 것 같은 기분이었다. 남자친구가 나쵸 대여섯 조각을 집어서 한 입에 먹는 시늉을 할 때, 직원이 한 입에 다 먹는 걸 보고 싶다면서 응원해주기도 했다. 마치 테마파크에 온 것처럼 설레는 시간이었다.

이번 방문에는 안타깝게도, 내가 이 레스토랑이 이름에 걸맞게 <Happy>한 컨셉으로 운영된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사실 직원분들이 말을 걸 때 내가 아이라도 된 마냥 설레는 마음이 생겼지만, 어떻게 반응을 해야될지 몰라 그저 직원이 시키는 대로 했다. 다음에 갈 일이 생긴다면 그때는 나도 Happy한 마음으로 직원 분들의 너스레를 받아줄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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