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 리버 스튜디오
우연히 마주친 감성 카페
어제 갑자기 오락실이 가고 싶어져서 Free Play City를 들렀는데 전체적으로 동네가 예술가의 동네라는 느낌이 든다. 이유를 딱 집어서 말하기는 어려운데 예술대학교 앞에서 볼 법한 카페나 식당들이 많았다. 실험예술, 영상예술, 모더니즘으로 설명할 수 있을 법한 인테리어를 한 가게들이 즐비해있는 것을 보고 오랜만에 기가 빨렸다.
재학중일 땐 몰랐는데, 막상 졸업하고 나서 이런 카페에 다시 가려고 하니까 발길이 무거웠다. 반가운 느낌 반에 살짝은 꼴보기 싫은 감정 반 정도의 느낌이었다. 평소라면 딱히 가고 싶지 않았겠지만 화장실이 너무 급했고, 화장실이 있을 법한 장소 중에서는 제일 가까웠다. 사실 오락실에 들어가서 화장실을 가도 됐었는데, 오락실 오픈까지는 30분 정도 남았었다.
일부러 이런 장소를 피해왔었는데,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그냥 내가 이제 예술을 하지 않고 할 수가 없기 때문에 꼴보기 싫었던 것 같다. 엄밀히 따지자면, 나는 예술과는 전혀 다른 길을 걷고 있는데 이런 공간에 들어가면 괜히 아련해지고 다시 해보고 싶고 그런 생각이 들까봐 그게 좀 무서웠던 것 같다.
우연히 들어간 것치고는 나쁘지 않았다. 사실 내가 그동안 갔던 카페 중에서는 꽤 괜찮은 편이었다. 그런데 여기, 술도 팔고 커피도 팔고 가게도 파는데 뭐라고 불러야 할지 좀 혼란스럽다. 펍이면서 카페면서 레스토랑이다. 심지어 음악을 크게 틀어줘서 왠지 모르게 영국판 감성주점 같은 느낌도 난다. 다들 음악을 틀어놓고 종업원도 손님들도 따라부르는 분위기인데 죄다 내가 모르는 노래여서 그냥 분위기만 즐겼다.
예술대학교를 졸업해버리는 바람에
운이 나빴다. 예술을 좋아하면서 예술을 공부하는 것은 어쩌면 저주받은 건지도 모른다. 내가 하고 싶었던 게 아니라 막연한 동경으로 시작했었고, 사람에 따라 다르긴 하겠지만 내 경우에는 끝이 좋지 않았다. 취미가 전공이 되어버린 순간 재미를 더는 느끼지 못했다. 더군다나 전공을 살려 일을 하려고 했었는데, 지루하기 짝이 없었다.
그러고는 영어를 공부하고 어떻게 일이 잘 풀려서 영국에서 살고 있었다. 예술과는 일부러인지는 몰라도 담을 쌓고 살았다. 가끔 책을 조금 읽고 넷플릭스를 보고 그게 전부였다. 어쩌다 우연히 예술가가 운영하는 것만 같은 카페에 들러보니 오히려 전공과 멀어진 삶을 살게 된 지금에서야 예술을 즐길 수 있게 된 것 같다.
가게를 훑어보니 어디서 구해온 건지 모를 네온사인과, 드로잉들과 인테리어 소품들이 눈에 띄었다. 그 중에서도 가장 눈에들어왔던 것은 브라운관을 쌓아올려서 영상 아트웍을 틀어놓은 것이었다. 자리에 앉아서 몇 분간은 영상을 유심히 봤다. 샛노란색, 파란색 번갈아가며 배경이 바뀌고 엇박자로 움직이는 세 명의 사람들. 다분히 현대예술적이었지만 굳이 직원에게 가서 혹시 사장님이 예술대학교 출신이신가요 하고 당연한 걸 물어보는 건 하지 않았다.
플레이하면 눈치보일 것 같은데...
테이블이 체크무늬였다. 그런데 딱 가로세로 8칸이길래 체스판 같다고는 생각했는데, 옆에 체스말이 담긴 주머니가 펜스에 걸려 있었다. 일단 나는 혼자 방문한 거기도 하고, 만약 누군가와 같이 왔었어도 딱히 체스를 뒀을 것 같지는 않다. 만약 이 자리에 앉아서 체스를 둔다면, 음식은 어디에서 먹어야 할까.
술 정도는 마시면서 둘 수 있을 것 같지만, 체스를 두기 시작하면 괜히 주위에서 몰려와서 쳐다볼 것 같다. 나는 이걸 자의식 과잉이라고 생각하고 싶지만, 상황이 너무 특이하니까. 신나는 음악을 뒤로하고 차분하게 체스를 두고 있으면 나 같아도 슬쩍 가서 볼 것 같기는 하다.
맛은 꽤나 괜찮았다
내가 주문한 건 핫도그롤(Hot Dog Roll)이었는데, 머스터드 소스가 조금 강하고 소세지는 조금 짭짤하고 마늘 후레이크는 왜 뿌렸는지는 모르겠지만 꽤나 맛있게 먹었다. 전혀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마늘후레이크와 소세지 롤의 조합이었지만 소세지도 좋아하고 마늘도 좋아하는 나로서는 꽤나 신선한 충격이었다.
가격은 5파운드 정도 나왔던 것 같은데, 한화로 비교하면 8천원쯤 하는 것 같지만 여기서 돈 벌어서 생활하는 나에게 그렇게 부담되지는 않는 가격이었다. 다들 이미 알겠지만, 5파운드면 영국 물가 치고 비싼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마치며
런던에서 힙한 카페를 가봐야지 하는 마음으로 한 번 들르기에는 런던 외곽에 있다. 다른 볼일이 이 근처에서 있다면 가보는 것도 나쁘지는 않겠지만, 분위기만 보고 가기에는 접근성이 다소 떨어진다. 사실 이런 종류의 카페는 굳이 여기가 아니더라도 센터나 여러분이 사는 지역에 이미 있을 것이다. 그래도, Free Play City에 놀러갈 일이 있거나 친구가 Manor House 근처에 산다거나 하면 한 번쯤 가보는 걸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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